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41

사무엘상,
사람은 키를 재고
하나님은 마음을 보신 책

어깨 하나만큼 큰 왕과 거인 장수 사이에서,
하나님은 양 치던 막내를 고르셨다

사무엘상 1–31장
여는 글

사무엘상은 이야기책으로 읽어도 손에서 놓기 어려운 책이에요. 아이를 달라고 울며 기도하다 술 취한 사람으로 오해받는 여인, 잃어버린 나귀를 찾으러 나갔다가 왕관을 얻은 청년, 짐 더미 사이에 숨은 왕, 돌멩이 하나로 거인을 쓰러뜨린 목동까지 나와요. 😄 드라마 작가들이 탐낼 만한 장면이 장마다 이어져요.

그런데 이 책에는 자꾸 “키” 이야기가 나와요. 사울은 “어깨 위만큼 더 컸고”, 다윗의 큰형 엘리압도 키가 컸고, 골리앗은 그보다 훨씬 컸어요. 사람들은 계속 키를 재는데, 하나님은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16:7)고 하세요. 한나의 노래, 엎드러진 다곤, 대장장이 없는 나라, 두 개의 돌, 골리앗의 키, 그리고 책 전체를 꿰는 겉옷 한 벌까지, 사무엘상의 숨은 이야기를 따라가 볼게요.

1부

사무엘상은 어떤 책일까?

사사 시대가 저물고 왕의 시대가 열리는 다리 같은 책

사무엘상은 사사기의 혼란이 끝나 갈 무렵, 대략 주전 11세기 이스라엘 이야기예요. 사사기는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로 끝났지요. 사무엘상은 그 질문을 이어받아요. “그럼 왕이 있으면 해결될까?” 책은 세 사람을 따라가요. 마지막 사사이자 선지자인 사무엘, 백성이 원해서 세운 첫 왕 사울, 그리고 하나님이 마음을 보고 고르신 다윗이에요. 누가 썼는지는 책에 나오지 않아요. 유대 전통(탈무드)은 사무엘이 쓰기 시작했고, 그가 죽은 뒤의 일은 선지자 갓과 나단이 이어 썼다고 전해요(대상 29:29 참고).

원래는 한 권히브리어 성경에서 사무엘상·하는 원래 한 권이었어요. 헬라어 번역 칠십인역이 두 권으로 나누고 열왕기와 묶어 “왕국기 1–4권”이라 불렀어요.
사무엘이라는 이름한나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1:20)며 이 이름을 지었어요. “구하다”는 히브리어로 “샤알”인데, 이 말이 바로 “사울”이라는 이름의 뿌리예요.

※ 사무엘서의 저자에 대한 탈무드의 전승(바바 바트라 14b–15a)은 전통일 뿐 성경이 직접 말하는 내용은 아니에요. 지금은 저자를 알 수 없다고 보는 견해가 많아요.

사무엘상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세 사람의 이야기
사무엘에서 사울로, 사울에서 다윗으로 무대의 주인공이 바뀌어 가요.
2
사사에서 왕으로
이스라엘이 사사 시대를 마치고 왕국으로 바뀌는 길목을 보여 줘요.
3
기도로 시작하는 책
아이 없던 한 여인의 눈물 기도로 시작해서, 길보아 산의 전쟁터에서 끝나요.
4
외모보다 마음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16:7)가 책 전체를 꿰뚫어요.
5
원수를 두 번 살려 준 사람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을 두 번이나 손에 넣고도 해치지 않아요(24장, 26장).

사무엘상의 중심에는 이 말씀이 있어요.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16:7). 백성은 키 큰 왕을 원했지만, 하나님은 들판에서 양을 치던 막내를 부르셨어요. 그리고 그 다윗의 자손으로 참된 왕,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어요(마 1:1).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한나의 노래부터 책을 꿰는 겉옷 한 벌까지

1

술 취한 줄 알았던 여인이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노래하다

사무엘상 1:9-20 · 2:1-10 · 누가복음 1:46-55

한나는 아이가 없어서 해마다 울었어요. 실로의 성막에서 입술만 움직이며 속으로 기도하자, 제사장 엘리가 그 모습을 보고 술에 취한 줄 알았어요(1:13). 😄 “언제까지 취하여 있으려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한나가 대답해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1:15). 소리 없이 마음을 쏟아 놓는 기도였던 거예요.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셨고, 한나는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불렀어요. 그리고 아이를 성막에 맡기며 노래를 불러요(2:1-10). 그런데 이 노래의 마지막 줄이 놀라워요.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2:10). 이스라엘에 아직 왕이 한 명도 없던 때였어요. 성경에서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 곧 히브리어 메시아가 왕을 가리키며 나오는 첫 자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노래예요. 아이 없던 여인이 왕보다 먼저 메시아를 노래한 거예요.

천 년쯤 뒤, 갈릴리의 처녀 마리아가 이 노래를 다시 불러요. 한나가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2:8)라고 했다면, 마리아는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눅 1:52)라고 노래해요. 두 노래는 꼭 닮았어요. 한나가 멀리서 바라본 그 기름 부음 받은 왕, 예수 그리스도가 마리아의 품에 오셨어요.

※ 유대 탈무드(베라호트 31a)는 한나의 기도에서 “입술만 움직이며 조용히 기도한다” 같은 기도의 여러 원칙을 배운다고 말해요. 유대 전통의 해석으로 참고해 주세요.

돌아보기
사람이 오해해도 하나님 앞에 내 마음을 그대로 쏟아 놓으며, 낮은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2

언약궤를 빼앗긴 날,
엎드러진 것은 다곤이었다

사무엘상 4:18-22 · 5:1-5 · 6:7-12
이스라엘 진영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4:22)
VS
아스돗 다곤 신전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5:3)

이스라엘은 언약궤를 부적처럼 전쟁터에 들고 나갔다가 졌어요. 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에 늙은 제사장 엘리는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어요. 성경은 그 이유를 짧게 적어요.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4:18). 그리고 그 며느리는 아이를 낳으며 이름을 “이가봇”이라 지었어요.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4:21)는 뜻이에요.

여기에 히브리어 말놀이가 숨어 있어요. “영광”은 카보드인데, 원래 “무겁다”라는 말에서 나왔어요. 엘리가 “비대했다”는 말도 같은 뿌리예요. 하나님의 영광은 가볍게 여기고 자기 배만 무겁게 했던 제사장 집안에서, 결국 진짜 무게가 떠나 버린 거예요.

그런데 반전이 있어요. 블레셋은 빼앗은 궤를 자기 신 다곤의 신전에 전리품처럼 두었어요. 다음 날 아침, 다곤이 궤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러져 있었어요(5:3). 😄 다시 세워 두었더니, 그다음 날에는 머리와 두 손이 잘려 문지방에 놓여 있었어요. 그래서 “오늘까지” 다곤 제사장들은 문지방을 밟지 않았다고 해요(5:5). 결국 블레셋은 젖 나는 암소 두 마리에게 궤를 실어 보내요. 송아지를 집에 두고 온 어미 소들이 울면서도 한눈팔지 않고 이스라엘 땅 벧세메스로 곧장 걸어갔어요(6:12). 사람이 지키지 못한 궤를 하나님이 스스로 지키시고 돌아오셨어요.

※ 다곤을 흔히 “물고기 신”으로 소개하지만, 이는 히브리어 “다그(물고기)”와 소리가 비슷해서 중세 때 널리 퍼진 해석이에요. 고대 근동 문헌에 나오는 신 “다간”은 곡식과 관련된 신으로 보는 학자가 더 많아요.

돌아보기
하나님을 내 필요를 채우는 부적처럼 쓰지 않았는지 돌아보고, 스스로 영광을 지키시는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3

나귀를 찾으러 나갔다가 왕관을 얻은 사람,
그리고 짐 더미 속에 숨은 왕

사무엘상 8:4-7, 19-20 · 9:1-3, 20 · 10:21-24

백성이 사무엘에게 와서 말해요.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8:5). 다른 나라들이 부러웠던 거예요. 사무엘은 섭섭했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세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8:7). 이스라엘의 진짜 왕은 처음부터 하나님이셨어요.

그리고 첫 왕 후보가 등장해요. 베냐민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9:2). 그가 처음 등장하는 이유가 재밌어요. 아버지의 암나귀들을 잃어버려서 찾으러 다니는 중이었어요(9:3). 사흘을 헤매다 사무엘을 만났더니, 사무엘이 먼저 말해요. “사흘 전에 잃은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이미 찾았느니라”(9:20). 😄 나귀를 찾으러 나갔다가 나라를 얻은 셈이에요.

그런데 왕으로 뽑히는 날, 사람들이 아무리 찾아도 사울이 안 보여요. 하나님께 여쭈니 대답이 나와요. “그가 짐보따리 사이에 숨었느니라”(10:22). 백성이 그를 데려오니 역시 “어깨 위만큼 컸더라”(10:23). 겸손했던 걸까요, 두려웠던 걸까요? 키는 누구보다 컸지만, 그 마음은 아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까지 자라지 못했어요. 이스라엘이 원한 것은 눈에 보이는 큰 왕이었지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마음이었어요.

돌아보기
남들처럼 눈에 보이는 든든함을 구하다가 하나님을 왕의 자리에서 밀어내지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4

대장장이가 없던 나라,
고고학이 풀어 준 단어 “핌”

사무엘상 13:19-22 · 14:6

사울 시대 이스라엘은 군사적으로 형편없었어요. “그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려워하였음이라”(13:19). 블레셋은 철 다루는 기술을 독점했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농부들은 보습이나 낫 날이 무뎌지면 블레셋 대장간까지 가서 돈을 내고 갈아야 했어요. 😄 적에게 농기구 수리를 맡기는 나라였던 거예요. 전쟁 날 칼과 창을 가진 사람은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뿐이었어요(13:22).

이 단락에는 오랫동안 아무도 뜻을 몰랐던 단어가 하나 있어요. 날을 세우는 값을 말하는 13:21의 핌이에요. 구약 전체에서 여기 한 번만 나오다 보니, 옛 번역들은 이 말을 “줄(file)” 같은 연장으로 추측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20세기 초, 이스라엘 땅 여러 곳에서 “핌”이라고 새겨진 작은 돌 저울추들이 나왔어요. 무게는 대략 7.6그램, 한 세겔의 3분의 2쯤이었어요. 흙 속에서 나온 저울추가 성경 단어의 뜻을 알려 준 거예요.

은 7.6그램은 오늘 은 시세(2026년 10월 초, 1그램 약 2,700원)로 따지면 2만 원 남짓이에요. 하지만 그 시절 은은 지금보다 훨씬 귀했으니, 농사짓는 집에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어요. 칼 두 자루뿐인 군대, 하지만 요나단은 이렇게 말하며 블레셋 진으로 올라가요.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14:6). 무기가 없어도 구원은 여호와께 속해 있었어요.

※ 발견된 “핌” 저울추들은 7.2–7.8그램 정도로 조금씩 차이가 있어요. 오늘 가치로 바꾼 금액은 은의 금속 시세만 단순 계산한 것이라 당시 실제 구매력과는 다릅니다.

돌아보기
가진 것이 적다고 주저앉지 않고, 구원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않았음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5

두 개의 돌,
“여기까지 도우셨다”와 “나를 위하여”

사무엘상 7:12 · 15:12, 22-23
사무엘의 돌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7:12)
VS
사울의 기념비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15:12)

사무엘상에는 승리 뒤에 세운 돌이 두 개 나와요. 하나는 사무엘의 돌이에요. 미스바에서 블레셋을 물리친 뒤, 사무엘은 돌 하나를 세우고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붙여요.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7:12). 에벤은 “돌”, 에셀은 “도움”이에요. 이 돌에는 사무엘의 이름이 없어요.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 새겨져 있어요.

또 하나는 사울의 기념비예요. 아말렉과 싸워 이긴 뒤 사울은 갈멜에 가서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어요(15:12). 여기서 “기념비”는 히브리어로 “손”이라는 뜻의 야드예요. 훗날 압살롬도 자기 이름을 남기려고 같은 이름의 비석을 세웠지요(삼하 18:18). 그런데 사울은 하나님이 다 진멸하라고 하신 것 가운데 좋은 것을 남겨 두고 있었어요. 자기 이름은 높이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절반만 들은 거예요.

그 자리에서 사무엘이 유명한 말을 해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15:22). 사울은 “좋은 양과 소는 하나님께 제사드리려고 남겼다”고 둘러댔어요. 😄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비싼 제물이 아니라 말씀을 듣는 귀였어요. 우리 삶에 세울 돌은 하나뿐이에요. 내 이름이 아니라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을 새기는 돌이에요.

돌아보기
오늘의 작은 승리 위에 내 이름의 기념비를 세우지 않고,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에벤에셀의 고백을 새깁니다.
6

골리앗의 키는 몇 미터였을까,
그리고 다시 엎드러진 블레셋

사무엘상 16:6-7 · 17:4-7, 40-50 · 5:3

하나님이 사무엘을 이새의 집으로 보내셨을 때, 사무엘은 큰아들 엘리압을 보고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했어요.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세요.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16:6-7). 사무엘조차 키를 보고 있었던 거예요. 하나님이 고르신 사람은 들에서 양을 치느라 그 자리에 부르지도 않은 막내 다윗이었어요.

바로 다음 장에서 성경에서 가장 키 큰 사람이 등장해요. 가드 사람 골리앗,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17:4)이에요. 한 규빗을 약 45센티미터, 한 뼘을 약 22센티미터로 잡으면 2미터 90센티미터쯤 돼요. 그런데 재밌게도 헬라어 칠십인역과 사해 사본의 사무엘서 사본(4QSama)에는 “네 규빗 한 뼘”, 곧 2미터쯤으로 적혀 있어요. 어느 쪽이든 그 시대 사람들 평균 키를 훨씬 넘는 거인이었어요. 갑옷 무게는 놋 오천 세겔(17:5), 오늘 단위로 약 57킬로그램이에요. 쌀 20킬로그램 세 포대 가까이를 입고 다닌 셈이에요. 창날만 철 육백 세겔, 약 7킬로그램이었어요(17:7). 😄

다윗은 사울의 갑옷도 벗어 버리고, 시냇가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골라요(17:40). 그리고 외쳐요.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17:45, 47). 돌이 이마에 박히자 골리앗은 “땅에 엎드러졌어요”(17:49). 앞에서 다곤이 언약궤 앞에 엎드러졌던 것처럼(5:3), 블레셋의 자랑이 또 한 번 얼굴을 땅에 대고 쓰러져요. 키로 재면 다윗은 상대가 안 됐지만, 그 싸움은 처음부터 여호와께 속한 전쟁이었어요.

※ 고대의 규빗과 세겔은 시대와 지역마다 조금씩 달라서, 여기 적은 미터와 킬로그램은 대략적인 값이에요(1세겔 약 11.4그램 기준). 2005년 골리앗의 고향 가드(텔 에스-사피)에서 “골리앗”과 비슷한 이름 두 개가 새겨진 토기 조각이 나왔지만, 성경의 골리앗 본인을 가리킨다는 증거는 없어요.

돌아보기
문제의 키와 무게에 눌리지 않고, 전쟁이 여호와께 속했음을 믿으며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갑니다.
7

작은 겉옷에서 베어진 옷자락까지,
책 전체를 꿰는 겉옷 한 벌

사무엘상 2:19 · 15:27-28 · 18:4 · 24:4-6, 20 · 28:14

사무엘상을 다시 읽다 보면 “겉옷”이 중요한 순간마다 나와요. 히브리어로 메일이라는 옷이에요. 시작은 따뜻해요. 한나는 성막에 맡긴 어린 사무엘을 보러 해마다 올라갈 때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가져갔어요(2:19). 😄 해마다 한 치수씩 커졌겠지요. 엄마의 기도가 실과 바늘이 되어 그 옷에 담겼어요.

그 겉옷이 찢어지는 날이 와요.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말을 듣고 돌아서는 사무엘의 겉옷자락을 사울이 붙잡자 찢어졌어요. 사무엘이 말해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15:27-28). 찢어진 옷자락이 찢어지는 나라를 보여 준 거예요. 그리고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다윗을 처음 만난 날,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어요”(18:4). 왕자가 자기 자리를 다윗에게 내어 준 셈이에요.

마지막은 엔게디 동굴이에요. 다윗을 쫓던 사울이 볼일을 보러 동굴에 들어왔는데, 하필 그 안에 다윗 일행이 숨어 있었어요(24:3). 😄 다윗은 조용히 사울의 “겉옷 자락”만 베고는 곧 “마음이 찔려” 말해요.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24:6). 그 옷자락을 본 사울은 이렇게 고백해요.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24:20). 다윗은 칼로 왕관을 빼앗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어요. 그리고 그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분은 군인들이 겉옷을 나누고 속옷은 제비 뽑는 것을 보시며 십자가에 달리셨어요(요 19:23-24). 한나의 노래가 바라던 기름 부음 받은 왕은, 자기 옷까지 내어 주신 왕이세요.

※ 엔돌의 여인 앞에 나타난 사무엘도 “겉옷을 입었다”(28:14)고 해서, 사울이 그를 알아봐요. 겉옷을 책 전체의 상징으로 연결하는 것은 여러 주석가들의 해석이에요.

돌아보기
내 손으로 자리를 빼앗으려 하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내 겉옷을 이웃에게 벗어 줄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구합니다.
맺는 글
사람은 키를 재고,
하나님은 마음을 보신다

사무엘상은 아이 없는 한 여인의 기도로 시작해서 길보아 산에서 쓰러진 왕으로 끝나요. 그런데 마지막 장에 조용한 장면이 하나 있어요. 블레셋이 사울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 매달자,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이 “밤새도록 달려가서” 그 시체를 거두어 장사해요(31:11-13). 사울이 왕이 되고 처음으로 구해 준 성읍이 바로 야베스 길르앗이었어요(11장). 사람들은 그의 처음 은혜를 잊지 않았어요.

키 큰 왕은 쓰러졌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쓰러지지 않았어요. 한나가 노래한 “기름 부음 받은 자”는 양 치던 다윗을 거쳐,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돼요. 우리를 고르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키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세요.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16:7)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